47. 타버린 여름, 사라진 가을.

이렇게 날씨가 막무가내로 추워지면, 어느새 여름은 타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여름은 길고, 무더웠고, 너무 더운 나머지 매미 조차도 땅에 떨어져 울음을 그쳤는데 시린 손으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이 괜히 어색한 날이다.

문득 이렇게 무심히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잔인한 지나감 속에서 각자의 문장을 갖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 살 먹는 거네.” 혹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니?”라면서 한 마디씩 덧붙인다. 난 벌써부터 25년을 마무리 할 준비에 지난 일기장을 종종 들춰본다. 그땐 이랬구나, 하고 당시 심각하고 진지했던 나를 돌아보며 지금 웃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를 느낀다. 그때야 힘들었지만, 지금 웃을 수 있다면 참 감사한 일이다.

과거는 지나갈 뿐, 해석하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다. 어떤 과거든 나만의 좋은 해설을 붙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무언가를 잃었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계절처럼 지금 내가 누리는 좋은 것들도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을 요새는 은근히 자주 한다. 좋다고 느낀 것들이 나도 모르게 사라져서 그럴까? 아무튼 겨울이 왔고, 나는 또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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