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

잃어버렸다는 것은 능동적인 표현인가, 수동적인 표현인가?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잃어버리는 행위는 철저히 수동적이다.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 나는 오늘 지갑을 잃어버리고야 말거야라며 아침 출근길부터 마음 속 한 켠에 “잃어버릴거야, 잃어버릴거야.”라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오늘 나가기 전에 회사 동료에게 가져다 줄 선물을 꼭 챙겨야겠어.”라고 말한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자 약속을 잃어버리고 나가는 경우가 있다. “챙겨야 해.”라고 말하지만 그 약속을 잃어버리고나서야 “아참, 그것을 챙기기로 했는데 깜빡하고 말았네.”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어떤가? 나는 최근 요가수련을 마치고 마켓에서 무언가를 사려고 가방을 열어 지갑을 찾으려는 순간, 그때 지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앉아 가방을 이불 털듯 샅샅이 뒤졌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복기’를 시작했다. 내가 잃어버린 ‘시점’이 대체 어디인가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온 길을 되돌아 걸어왔다.

“요가원에 두었을까? 요가원에 오기 전 카페에 두었던 것일까? 아니야. 카페는 아니야. 왜냐하면 난 결제를 했거든. 결제를 하고 습관처럼 가방에 넣었을 텐데. 결제는 밖에서 했으니까, 심지어 거스름돈을 받았으니 카페는 아니야. 그럼 가방에 넣었을텐데…그 이후로 난 결제를 한 적이 없는데. 그러면 지갑은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이지?”

말한 그대로 증발이다. 그날 내 지갑은 증발해버렸다. 나는 지갑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고, 필요한 돈만 꺼내서 결제한 후 가방에 바로 넣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카페에서 요가원까지 가는 길에 지갑은 가방에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갑은 없었고, 다시 카페에 가봤지만 지갑은 없었다. 증발한 지갑을 두고 나는 그날 하루를 온통 복기하는데 썼으며, 아무리 복기해도 찾을 수 없는 증발한 지갑을 생각하느라 잠까지 설치게 됐다.

다음날, 다다음날이 되기까지 지갑을 잃어버린 사건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난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됐다.

“잃어버려야 했구나.”

이 표현은 정말이지 이상한 표현이다. 내가 스스로 잃어버려야 하는 지갑이라니. 난 애초에 “지갑을 잃어버릴 거야.”라며 주문을 외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시간에 지갑은 잃어버렸어야 했던 일종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생각의 흐름이, 꽤나 합리적인 추론보다 마음에 든다.

합리적 추론은 이런 것이다.

“음, 나는 카페에서 계산하고 무의식적으로 계산대 위에 둔 것이야. 그래서 난 지금 지갑이 없어. 그것은 나의 실수였고, 아주 합리적인 것이야. 원인에 의한 결과지.”

반대로 일어나야 할, 비합리적 추론은 이런 것이다.

“지갑은 그때 잃어버렸어야만 했어. 지갑에게 죄가 있는 것,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야. 그냥 그 시간에,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던, 무언가에 불과한 거지.”

어쩌면 두 번째 생각도 합리적 추론일 수 있겠다. 어찌됐든 난 두 번째 문장에 이르게 됐고, 그 문장에 생각을 정착시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무언가를 우리는 잃어버리면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 나의 의도가 아니라, 어떤 다가오는 시점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이다. 지갑 뿐만 아니라, 관계, 무언가를 향한 열정이나 애정 같은 것들도 말이다. 늘 맛있게 먹던 음식에 대한 미각, 자주 입던 옷에 대한 즐거움, 자주 가던 카페에서 느끼는 평화 같은 감정도. 그냥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지게 된다. 정말 말 그대로 일순간에 사라지고, 우리는 우연히 그것을 알게 된다. 아, 이제 더 이상 즐겁지 않구나. 그것은 나의, 우리의 잘못인가? 아니다. 어느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잃어버려진 지갑처럼,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은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이해의 동물이다. 이해하려고 하고, 합리적으로 납득하려 한다. 그래서 가장 슬픈 슬픔은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다. 갑작스런 지인의 죽음, 헤어짐, 사고로 인한 어떤 불운한 결과들. 그때 우리는 “왜 하필, 지금,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라며 한탄할 뿐이다. 다가온 시점이 이해되지 않아 너무 슬프다. 슬픔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의 일종의 성질이다. 다가오는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잃어버린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쓰지만 철저히 수동적인 표현이다. 오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릴 때가 되었기 때문. 그것은 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게 되고, 우리는 피할 길이 없다. 다가오는 것은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은 멀어질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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