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응시
최근 나는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매일 요가 수련을 하고, 3-4시간 정도를 몸을 쓰는데 쓰고 있으며, 변함없이 나의 시간들을 쌓아가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잃어버림’에 대한 글을 쓰고 난 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밀도 높게 보내던 하루는 갑작스레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딱히 슬프거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므로 수련을 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불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허공을 응시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잃어버림’이다. 어디갔는가, 내가 관심과 열정을 가지던 무언가를 찾으며 나는 말한다.
“언제 잃어버린 것이지?”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보통은 이유를 찾기 위해 언제, 어디서를 묻는다. 잃어버린 것을 납득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묻고, 왜 잃어버렸는지 자신의 행동을 추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보통의 잃어버림은 ㅡ 단순히 덜렁거림 혹은 건망증에 의한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면 ㅡ 일종의 운명적 행위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요가적 사유에서는 이미 잃어버린 것은 과거요, 잃어버린 상태는 현재이자, 또 다른 현재는 잃어버렸으니 빈 상태를 의미한다. 무언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이고, 다시 새로운 현재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이유를 추적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채울 기대감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현재는 현재이며, 미래는 미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요가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 여기에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잃어버림에 대해서 생각하고,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현재이고, 허공은 현재이며, 비어있는 마음은 나의 또 다른 현재일 뿐이다. 그래서 허공을 응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출발이자, 새로운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나의 요가적인 수련이자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