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탕가와 공동체

2편. 우리들의 요가

@다산 요가 다르마

“요가는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삶은 긴 여정이라는 것을.”

<아쉬탕가와 공동체> 2편은 다산 요가 다르마 도반분들의 마이솔 수련 현장에 관한 기록입니다. 제목은 <우리들의 요가>로 지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날, 홍승준 선생님께서 도반분들의 수행기를 엮은 작은 책자를 하나 선물로 주셨는데, 이 책자에는 도반분들께서 수행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성스럽게 기록해두셨더군요. 지하철에 앉아 찬찬히 읽어나가며, 사진과 함께 글을 엮으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도 참 좋더라구요. 공동체라는 단어를 따뜻하게 표현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르마 공동체에 축적된 시간과 마이솔 특유의 현장성을 보기 위해 2시간 동안 저 또한 수련하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완벽한 자세보다는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호흡, 드리스티에 집중했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신체나 얼굴 윤곽 등은 보정하지 않았습니다.

수련하고 계신 현장에서 모두에게 뜻깊은 사진을 남겨드리고자 한 분 한 분 촬영해드리고 싶었으나, 여력이 부족하여 그러지 못한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촬영을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리며,

김요한 드림.

  • 우리들의 요가


내가 요가를 시작한 건 2016년 여름이다. 큰 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네 살이었던 내 나이 서른넷. 세상 모든 스트레스를 이고 지고 살면서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기 보다는 버겁기만 했던 날들이었다. 내 일상의 가장 큰 낙은 애들을 빨리 재우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서너 잔의 맥주. 덕분에 나는 늘 피곤했고, 위를 자극하는 음식들로 잦은 두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도 큰 소용이 없었고 응급실에만 두 번을 실려 갔으니, 걱정도 걱정이려니와 젊은 나이지만 내 건강 상태와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기에 나는 지인으로부터 한 아쉬탕가 요가원을 추천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홍승준 선생님. 요가밖에 모르는 친절한 고집쟁이 선생님 덕분에 나는 전쟁 같은 일상 사이사이에 숨을 쉬는 법을 배웠고, 천천히 아쉬탕가 요가에 스며들었다.



19살, 생에 첫술을 시작했어요. 29살에 아쉬탕가 요가를 만나기 전까지 10년 동안 평생 마실 만큼의 술을 다 마셨다면 얼마나 마셨을지 가늠이 되실까요? 제가 요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쯤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거나, 망가진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요가의 좋은 점은 감히 나열할 수가 없을 만큼 많습니다. 저는 인생의 은인이자 구세주인 요가를 만나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 요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과연 삶을 사는 것이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요가는 저에게 삶이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여정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매일 매트 위에 서고 싶습니다.”

“저렇게 건강하고 맑은 분들이 헌신하며 이어가는 아쉬탕가 요가는 뭘까?” 하는 호기심에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했을 당시 프리랜서로 일과 생활이 불규칙하여 나도 모르는 새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수련을 하게 되면서 나만의 루틴이 생기고 그것이 쌓이면서 큰 안정감을 얻게 됐다.

하지만 직장과 수련을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적응했지만, 아직도 요가와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여전히 불안정한 나지만, 매일 수련을 통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부드러운 유연함을 갖고 싶다. 

요가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정렬된 느낌이 듭니다. 매일 아침 매트 위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다른 나의 몸 상태를 자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요가를 하면서 절제된 삶을 배울 수 있어 또한 좋았습니다. 요즘은 두 발을 뻗고 바로 누워 잠들 수 있어 감사합니다.

80세까지 나이가 들어도, 몸이 허락하는 한 요가 수련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향후 소수자들을 위한 요가 재능기부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요가가 나에게 주었던 선물을 그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요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절제하며 바르게 살 수 있게 해준 요가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요가를 15년은 해보려고 한다.”

“요가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어느날, 내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게

무력하게

살아가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두가지 선택, 살든지 죽든지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살기로 결심했고

건강하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요가원에 갔다.

내 인생이

값지고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할 실마리를 찾아서

“어제는 잘 되던 아사나가 오늘은 안 된다.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마음의 동요가 잠잠해진다.”

“오늘도 수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어떤 이는 수련이 항상 재밌다고 하지만, 나는 매트 위에서 감정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왜 고통과 불편함의 터널로 자진해서 들어가는가?”

일단 시작했으니, 최대한의 혜택을 얻어보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아 보이고 나만 힘든 것 같다. 내 수련의 깊이가 부족한가보다. 괴로움은 크고 수련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은 짧다. 아, 어쩌란 말인가?

언젠가는 내가 받은 진도까지 호흡을 고르게 유지하며 고요히 수련해 보고 싶다. 균형 잡힌 몸과 마음으로, 부드럽게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알아가고 싶다.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다! 세상과 잘 지내고 싶고. 나의 마지막을 사바 아사나 하듯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너무 좋다.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서서히 몸이 더워지고,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다시 천천히 식어서 마무리 되는 기분이 좋다.

근육을 찾아볼 수 없었던 몸에
조금씩 낯선 근육들이 늘어나는 게 보기 좋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힘이 없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아프기만 했고, 마음에 병이 있어도 그저 바깥 환경이나 남 탓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요가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보는 힘이 생기면서 모든 괴로움이 바깥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어렵지만,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바깥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요가 수련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닦아 내게 주어진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는 내적 견고함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수련 준비를 많이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못 한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다.”

“큰 기대 없이, 밥먹듯,
물 마시듯 수련을 이어가고 싶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요가 수련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우트플루티히를 할 때 선생님이 카운트를 늦게 하시면,
나는 정말 괴롭다!”

나는 현재 아쉬탕가 요가를 만나는 일이 즐겁고 든든하여 이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시간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 삶의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신체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신체를 관리하며 수련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련권을 끊는 일이 불편한 일이 되지 않도록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잘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 삶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든 요소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적절히 뒤받쳐주며 균형을 유지하고 선순환을 지속할 수 있는 삶. 그것이 내가 요가를 통해 이뤄 나가고 싶은 모습이다.

2024년 5월에,

촬영을 허락해주신 다르마 도반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외에도 페이지에는 업데이트 되지 않았지만 함께 공유하고 보실 수 있는 사진들을 원장님 통해 함께 공유해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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