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재료>
누구나 각자의 ‘것’이 있다. 그것을 ‘재료’라고 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요리사로 태어나 그 재료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다 죽는 것으로 인생을 비유할 수 있겠다. 본래도 내 안에 갖고 있는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으로부터 다시 강한 영감을 준 <있는 재료>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쓰는 것에 대한 강박 그리고 비관주의적 태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갖게 해준다.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좋아해보지도, 무언가에 흠뻑 빠져보지도, 어떤 선량한 미소도 가져보지 못한 태생적 비관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경멸의 미소를 감추고 사람들을 비웃고 있는, 자만심에 가득찬 사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는 기술을 어느새 너무 많이 발전시킨 것인지, 지금껏 살면서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웬만하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따로 악의를 내비친 행동을 눈에 띄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 비관주의적 성격때문에, 나는 다소 낙관주의적 태도를 ‘겉으로는’ 지향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었을 때도, 또 지금 요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ㅡ 현재 내가 힌두교인이라는 것은 아님을 언급해둔다 ㅡ 어떤 것을 믿고 의존할 수는 없다. 어느샌가부터 나는 종교에 대한 의심을 꺼뜨릴 수가 없다. 무지막지하게 뱉어내는 기도라든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다양한 자세라든지, 종교적 행태를 나타내는 옷가지라든지, 아,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은 정말이지 끔찍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내 안에 그렇게 ‘티를 내고’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의심을 달고 살았다.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해서 항상 물었고, 그것이 너무 과하다보니 종교의 본질이라든지, 종교의 기본 행태 조차도 따르지 않는 종교인이자 비종교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널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신이 종교인이라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비종교인이군요. 무신론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자신 조차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군요.”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는 종교인도 아니고, 비종교인도 아니라고 스스로 정의하니까요.”
“그래서 뭐라는 겁니까?”
라는 식의 대화로 이끌어간다면, 굳이 할 말은 없다만, 어찌됐든 이런 비관주의적 성격은 어디가지 않기 때문에 항상 툴툴 거리며 예배를 드리거나, 지금도 요가를 하면서도 누군가를 경멸에 찬 시선으로 보거나, 으스대는 꼴을 조금이라도 비추면 그를 마음 속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거나,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아, 다행히도 나보다 우월한 종교는 이 모든 행태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비판하지 말라.>
<모든 동요로부터 멈추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라>
기독교와 요가의 경전에 의해서 나를 분석해보면, 나는 타인을 비판하는 것을 지금 당장 멈추고, 비판하는 그 자신의 현 상태를 자각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선량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요가적으로는 ‘현 상태’에 머무는 꽤 괜찮은 경지까지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내가 60세 ㅡ 적당히 늙어서 힘이 빠지는 시기를 스스로 산정한다면 ㅡ 가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적어둘 뿐이다. 또한 그럼에도, 나는 내 스스로 가진 이 <재료>에 대해서 딱히 부정할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깨달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나, 특유의 종교인의 행태나 목소리를 흉내낸다거나, 또 한편으로는 ㅡ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ㅡ 지나치게 종교의존적인 약자들 조차 짜증이 나는 마음을 쉽게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이런 나의 재료로부터 당장에 ‘자유’를 외친다던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내가 일평생 스스로 ‘요가’를 하면서 깨달은 ㅡ 혹은 ‘기도’를 하면서 깨달은 ㅡ 나만의 지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유하자면, 나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모아 글을 쓰는 비종교적 요가인일 수 있다. 아, 어쩌면 이렇게 바보 같은 자기묘사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 이것보다 비상하고, 명료한 나 자신에 대한 묘사가 또 있으랴. 나는 그런 인간이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나의 재료는 칼이고, 유리조각이고, 비관주의고, 동시에 내가 없는 것을 바라는 나 자신의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