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實體의 실체화
그 당시 갑작스럽게, 오랫동안 멈춰왔던 연이은 글쓰기聯作를 시작하게 된 것은 명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겠지만, 요가 수련을 떠나게 되면서부터였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감정과 또 다시 쌓여가는 물건들로부터 느꼈던 답답함, 방랑에 대한 이끌림 그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그는 타지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그대로 그럴 수박에 없었다. 그는 매일 소소하게 쌓여가는 물건들로부터 일종의 질식을 느꼈다. 없어도 무방한 것들이 그의 공간에 쌓여갈 때면, 그 물건들을 하루 빨리 버려버리고 싶은 욕망의 불을 꺼뜨릴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된 다소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물이 범람하듯 늘어났고, 그는 불안과 그의 초조함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무언의 부름에 대해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글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어떤 시기가 찾아오면 글이라는 것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그가 적어가는 단어의 수는 하루 건너 하루씩 더욱 늘어났고, 대신에 물건들은 빠르게 자취를 감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버리고, 기록하고, 내던지고, 비우는 만큼 자신을 글로 채워갔던 것이다.
그의 생각은 다소 추상적이었고, 감정에 관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실체화시키는 작업 곧 글쓰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생각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 글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언어로 보았기에, 눈에 보이는 언어로 추상을 실체화 할 때 세계는 비로소 구체화되고, 눈에 보일 수 있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존재의 죽음, 이 위협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생각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내어, 또렷이 보는 게 그에게는 소소한 구원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가 많은 것들로부터 고립되어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은 더욱 자취를 감추었고, 무엇이든 글로 써도 괜찮다는 미미한 확신을 얻었기에 그는 더욱 가감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추상을 실상으로 적어나갔다. 그는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사회적인 것과 비사회적인 것, 종교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 자신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비천함, 깨끗한 척 하려는 욕망과 더럽고 솔직한 욕망, 모호하고 비상식적인 그의 사상, 그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또 분명한 ‘명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시선을 고정하였고, 손가락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기계처럼 적어내려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의 욕망은 얼마나 성적이고 권위적인지, 또 얼마나 많은 호기심과 탐구심에 젖어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지배하고 싶은지, 통솔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지, 신이 되고 싶은지, 때때로 얼마나 비참한지, 때때로 얼마나 충동적인지 말이다.
그는 속일 대상도 없기 때문에 ㅡ 적어도 자신을 속일 이유는 없기에 ㅡ 더욱 염치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설령 누군가 그에게 ‘더러운 인간’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이제는 조금씩 상관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