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의 길

그는 그 무렵, 수행과 함께 매일 일정 분량의 독서를 하였는데, 오전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항상 같은 시간에 시작하여 같은 시간에 끝내었다. 강도 높은 오전 수련 이후에 책을 읽는 것은 꽤나 간편한 일이었다. 몸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정신 작용에 집중하기 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싯다르타>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이유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그의 움직임이 사문의 길을 걸어가 궁극에 이른 싯다르타와 비슷하다는 위안감때문이었다. 또한 함께 읽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책도 도움이 되었다. 헤세 또한 자신의 길을 ‘내부’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특이한 고집이 있었는데, 그는 누군가에게 속하는 것, 때때로 사람들이 유명하다는 어떤 수련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누군가에게 예속시키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되뇌었다.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말이다. 이미 전 세계에 어디를 가든, 마치 수많은 카페처럼 요가원과 깨달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즐비해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깨달음’에 이르렀는가, 그것 또한 의문이지만 요가는 이미 수행체계 뿐만 아니라 가벼운 체조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ㅡ 실제로 깨달음에 관한 것을 증명할 수도 없을 뿐더러 ㅡ 요가원이 많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누구나 “각자의 길을 걷는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그 또한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싯다르타가 고타마를 따르길 거부한 것처럼, 수행을 위해 어딘가로 잦은 이동을 하고, 수많은 행자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거나 특별한 수련법을 소개 받는 것이 다소 피로하고, 또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마치 자신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적으로, 그 스스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여러가지 감정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많은 혼란을 경험한 그로서, 특별히 기독교 신자로 오랫동안 길을 걸어왔지만 이미 신성에 대한 다양한 의심을 키운 후로부터 그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그 안에 있는, 깨끗하고 순수한 무언가였을 뿐이다. 때때로 그것조차 의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진 못했다. 불편한 것은 불편한 대로, 행해야 할 것은 행해야 하는 것으로, 그는 이미 만들어진 그가 ‘거짓’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것’일지라도, 그에게는 믿을 수 있는 것이 그의 본능과 감정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문’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스스로 길을 걷는 자,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내었고,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많은 것을 감당하려 했다. 그럴수록 그의 곁에는 누군가 있을 수 없었고,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종종 의도치 않게 찾아온 인연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오래있을 수 없었고, 그 또한 그들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았다. 그는 항구가 없는 배처럼 계속해서 떠돌기를 원했고, 종종 그에게 친절과 함께 무언가 깊은 관계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썩 반갑지 않았다. 그것이 상처를 주기 싫은 마음일지도, 아니면 스스로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고 싶지도 않아서일 것이다. 그는 이따금씩 그가 영영 홀로 있을 것인가 생각하곤 했지만, 그에게 가장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다만 그의 자유로움, 다만 그의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날 수련원에서 만난 인연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는 진실을 보고 싶습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나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이 아닌 것, 진실과 분명히 구별되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찾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너무 진지한 답변이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무심코 튀어나온 자신의 대답에 조금은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와 헤어진 후 그는 숙소로 돌아와 글을 썼고, 그 글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진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으랴, 생각했지만 진실 혹은 진리라는 것에 이끌려 그저 모르는 곳을 떠똘고, 매일 육체를 수련하고, 명상에 잠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잠들기 전 읽은 책은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만일 네가 네 속에 있는 것을 오게 하면, 네가 오게 하는 그것이 너를 구할 것이다.

만일 네가 네 속에 있는 것을 오게 하지 못하면, 네가 오게 하지 못하는 그것이 너를 죽일 것이다.”

외경 <토마의 복음서>

Previous
Previous

추상實體의 실체화

Next
Next

수련으로부터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