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소모적 수업과 알찬 수업
요가를 20년 이상 한 선생님들을 가끔 떠올린다. 중간에 어떤 위기가 있었을까,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요즘 수업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런 수업의 탄력성이 평생 유지될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없지는 않다.
어느새 한달에 100타임까지 늘어난 요가 수업은 나에게 요가가 잘 맞는다는 것을 입증해주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소모적이라고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가령, 요즘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주 1회 수업을 하는 요가원과의 관계이다. 회원과 나 사이에 어떤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매주 회원이 바뀌고, 나는 소위 타임비를 받기 위해 그 공간을 찾아간다. 종종 그 공간 조차도 맘에 들지 않으면 “이게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문하곤 한다 . 반면 주 2회, 주 3회까지 수업을 하는 공간도 생겼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회원들과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배를 타고 나아가는 느낌이 있다. 실제로 회원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것도 보인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한 배를 탔군요.”라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다시 생각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면을 고려한다. 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제대로 나와 컨택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도 들고. 어쩌면 수업이 많아졌기 때문에 노리게 되는 새로운 질문일 수 있다. 좋은 질문이라 생각한다.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 수업인가?”하는 질문은 유익하지 않은가?
요즘은 수업과 수련, 종종 하게 되는 촬영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이 꽉 차고 오히려 넘치기 때문에 책을 볼 여유 같은 건 잘 생기지 않는다. 불과 3달 전만 해도 책 볼 시간이 너무 넘쳐서 한달에 열권씩 읽곤 했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권도 읽기가 쉽지 않다. ‘독서’라는 단어가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내면의 채워짐이 없이 이대로 괜찮은가, 종종 반성하게 된다.
이 소모적 수업과 알찬 수업 사이에서 나는 몇개의 가지를 쳐낼 생각을 한다. 따져보면 쳐낼 수업이 많지도 않다. 고심하고 컨택한 공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빨리 그만둬야겠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공동목표’ 설정이 가능한가, 그것이 내 주된 고민이다. 자주 볼 수 없다면 공동의 꿈을 이뤄낼 수 없고, 서로가 탄력을 받기도 어렵다. 시너지를 낼 수가 없고, 에너지의 흐름이 생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고, 점점 멀어진다. 요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고, 무게감이 생기지 않는다. 말그대로 균형이 틀어진다. 그렇게 서로가 돈과 시간을 허비하며 시간을 땅에 버린다. 옳지 않은 일은 적확한 판단 하에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정리해야 한다.
어느새 25년은 두 달 남짓 남겨놓고, 끄트머리를 향해 흐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25년은 끝난다고 봐야한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25년을 마무리할 것인가, 그리고 26년에는 어떤 마음으로 수업과 수련에 임할 것인가 생각한다. 습관적인 사유의 흐름이다. 돌아보고, 다시 다음 기점을 향해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
어찌됐든 참 감사한 25년이다. 걱정했던 많은 것들이 채워졌고,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수업은 더 늘릴 수 없는 데까지 왔고, 수련 시간도 고정되었다. 내게 남은 것, 동시에 주어진 것은 이 구조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이며, 동시에 더 건강한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