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
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닌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그날 입을 옷이나 향수를 고르는 것처럼, 책장에 놓여있는 책의 겉면을 고양이가 얼굴을 부비듯이 스윽 훑어가면서 그날의 책을 고른다. 이동 시간이 길다면 조금 두터운 소설을, 그렇지 않다면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를 툭 꺼낸다. 그렇게 일단 한 권을 고르고 나면, 좋든 싫든 보통은 끝가지 읽게 되고, “책을 읽어야지.”라는 딱딱한 마음 없이 편안하게 읽어나가게 된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내 손에 덜렁덜렁 달려있는 책은 일종의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책은 사람이 쓰는 거니까, 그 사람의 생각 속, 산책로를 조용히 걷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군..”이라며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어느새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책 오른쪽 모서리를 만지작 하며 페이지를 넘길 준비를 한다. 무엇보다 이 감각, 엄지와 검지 사이에 한 장의 종이를 끼워 넣는 이 감각이 바로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종이책 특유의 질감, 노랗게 바래진 얇은 페이퍼의 그라데이션, 한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독특한 소리. 마치 무언가를 애무하듯이 ㅡ 고양이의 발바닥이라든지, 좋아하는 강아지의 턱이라든지 ㅡ 손이 종이에 가 닿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감각들이 내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사람들은 책을 들 때 손이 모양이 어떠한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종이책을 보는 각자의 습관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주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지만, 나는 자국이 남지 않는 포스트잇을 붙인다(이전에는 형광펜을 썼다). 빈 칸에 연필로 메모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절대로 그런 일은 못할 것 같다. 책의 색깔이 바래는 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인쇄된 활자 옆에 또 다른 활자를 적는 건 이상하게 불편하다. 모서리를 접는 일도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 나름대로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이런 건 해서는 안 돼.”라고, 분명 누군가가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그런 ‘법칙’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가방에 넣은 책이 젖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그런 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참 이상한 취향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있다.
각자가 무엇을 좋아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좋으면 좋은 거니까. 다만 최근에 종이책을 들고다니면서 “나는 갑자기 왜 종이책을 읽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계속 남겼기에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난 이래서 종이책이 좋은 건가,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