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4월, 수행기록
우연히 발리에서 마이솔을 경험한 후 3달에 걸쳐 주 6일 오전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발리에서 아데 선생님, 베트남에서 라쥬 선생님,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아쉬팅가 비디야에서 지도를 받고 있다. 정확한 빈야사를 잘 몰랐기 때문에 동작 순서나 호흡 등이 많이 엉켜 있었는데 비디야에서 많은 교정과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전과 다른 분위기에 처음 적응하는 것이 조금 어려움도 있었지만, 나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갔고 지금은 큰 동요없이, 그리고 너무 지나친 생각없이 수련하고 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꾸준히 수련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잘 안 되는 자세들을 빨리 성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최근 선물로 받은 책자에서 좋은 구절들을 읽고 그런 마음을 내려놓았다.
”만일 아쉬탕가가 아사나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의 스승은 체조선수들이 되어야 합니다. 천천히 매일 조금씩 수련하십시오.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찾아올 것입니다.”
며칠 전 쿠르마 아사나가 잘 되지 않아 혼자 낑낑대며 다리를 늘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오셔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을 주셨다. 흐름이 깨진다고, 너무 급하게 할 필요 없다고. 내심 부끄러웠는데, 한편으로는 아쉬탕가에 대한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쉬탕가는 빠른 성취를 장려하지 않는다. 천천히 자신을 정화하는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안 되는 자세는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되도록 하루에 한 번, 그리고 꾸준히 매일 하라고 권면한다. 때가 되면 올 것이라고, 모든 것은.
사실 좀 어려운 말이다. 때가 되면 다 온다는 말은, 현대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조급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방법론이 나와있기 때문에 정확한 적용을 한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꽤 많은 논쟁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서양인의 사고는 과학과 이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안 되는 자세들은 일종의 처방을 통해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믿게 만들고, 반대로 동양적 사고는 시간과 추상에 기대어 일종의 때(kairos)를 말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냥 무작정 연습하라고요?”
“수행하십시오. 때가 되면 올 것입니다.”
“아니요. 틀렸어요. 당신은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모릅니다. 해부학을 안 배웠나요?”
“아쉬탕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이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이성과 종교의 대립처럼 대화가 오고가는 느낌이다. 신이 있다고요? 믿음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신은 있습니다. 믿음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하기에, 이성적 사고에 갇혀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증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그쳐서는 안 되고
종교적 사고에 갇혀있는 사람은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에 나름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런 이성과 종교적 사고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듯 하고, 군말없이 지금은 아쉬탕가에 헌신하고 있다. 아는 척 할 이유도 없고, 조용히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수련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이해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시기에 맞춰 찾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나는 인연에 기대어 살고 있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열린 자세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단단해지고 싶은 요즘이다. 나의 수행은 그렇게 조금씩 기초를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