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

최근 인물 촬영을 다시 시작하면서, 동시에 영화적인 구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있었다. 이는 인물과 어떤 이야기를 연결 시키려는 시도다. 정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플롯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중대한 요소 중에 하나다. 어쨌든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의 플롯을 써내려가는 시도가 아니겠는가? 

영화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철수가 방에 있었다.”는 문장으로 영화는 시작되는 셈이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문장(시나리오)이 있을 때 영화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 구성을 고민한다는 것은 인물을 이야기 안에서 작동시키려는 시도이며, 단순 미학적 차원으로 사진을 접근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옥수역 / 4시 / 그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그녀는 누구이고, 그녀는 왜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녀는 어디로 향하는가 등의 질문이 쏟아진다. 아마도 이 질문이 이야기를 플롯으로 확장시키는 근본적인 접근일 것이다. 이런 시도는 촬영할 때 상상력을 불어넣게 도와준다. 또한 이런 이야기적 구조가 없으면 결국 사진과 영상은 공허해질 것이므로, 상상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촬영 전부터 옥수역과 그녀를 연결시키려 시도했는데, 안타깝게도 옥수역에 도착했을 때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일어날 지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을 느꼈다. 하지만 이 결핍감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욱 상기시켰다. 나에겐 무드보드가 아닌, 영화 콘티 같은 게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세계

이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이다. 나는 어느새 어떤 인물보다 이야기가 크다고 말하고 있으니, 나에겐 인물이 먼저 필요한 게 아니라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먼저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주어진 것이다. 다만 그날 주어진 것은 다소 연결 짓기가 어려웠는데, 말하자면 촬영 콘티가 전혀 없는 상태로 그냥 막 뛰어든 초기작 같은 느낌이었다.

검은색 목폴라, 20대의 여성, 옥수역, 4시… 심지어 그녀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여기서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된다. 주체적으로 카메라를 허락하고, 게다가 진지하게 카메라를 보고 있다. 이 특징 ㅡ 카메라 응시 ㅡ 은 영화와 사진을 구분짓는 주요한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인물과 인물을 카메라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때 카메라는 영화적 세계 바깥에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게 되면, 카메라맨은 인물과 같은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옥수역을 나와 명확한 목적지 없이 빛을 찾아 돌아다녔다. 가능한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동시에 내가 보았던 어떤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촬영에서 일부로 나는 16:9 가로 프레임을 자주 사용했는데, 실제로 사진에서는 16:9 프레임을 쓰지 않지만, 영화의 스틸컷처럼 그녀가 지금 이 세계의 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길 바랐던 마음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인물사진’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주인공으로 확장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접근은 내 모델에게 요청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외 촬영 장소를 정할 때, 나는 그녀에게 ‘익숙한 거리’를 요청했다. 그 안에 그녀의 시간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 이 아이디어는 아놀드 뉴먼으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그는 인물 사진을 촬영할 때 ‘환경인물사진’의 개념을 활용하여 그 인물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연진이라는 사람은 옥수역에 대해서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평소 잘 입지도 않는 목폴라를 입고 있다. 그러니 이 공허한 구조 속에서 이미지는 점점 길을 잃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ㅡ 개인적으로 그녀가 사진에 잘 묻어난다고 느끼는데 ㅡ 그녀가 사진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녀의 눈빛 때문일 것이다.




여섯 번째 기록에 이르러, 나는 파수꾼이라는 영화가 궁금해졌다. 또한 내가 촬영하려는 것이 단순히 흑백에 관한 것이 아님을, 어떤 이야기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게 됐다. 다음에 찾아올 질문과 이야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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