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가끔은
내가 “평안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게 영 신경쓰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 명상원을 찾아갔을 때, 마치 여름날 피부에 흐르는 느끼한 피지의 뭉텅이처럼 얼굴에 평화의 기운을 덕지덕지 바른 채로 “안녕하세요.”라며 웃음 짓는 것을 보는 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미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듯한 자만함에 대한 비소였을까? 나는 항상 속으로 상한 미소를 지으며 “웃기고 있네.”라고 답변한 후 겉으로는 “안녕하세요.”라며 사회적 가면을 쓰고 친절하게 답하곤 했다. 도대체 뭐가 평안하다는 것일까? 나 또한 평안을 바라고, 평안을 얻기 위한 ‘구원’을 갈망하지만, 즉 어떤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길 갈망하지만 어찌됐든 세상은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고, 평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전쟁터가 아니었던가? 내가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칼이 되어 돌아오는데 말이다. 마치 잔인하게 피해자를 괴롭힌 것이 발각된 학생이 웃음을 지으며, “당할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요.” 라고 답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입을 다물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신경쓰는 바보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구조를 인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모른다. 나는 모르니까, 확신에 찰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신은 너무 심각하군요.” 혹은
“당신은 너무 심각한 척 하는군요.”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여전히, 세상은 빛이 있는 곳에 늘 두터운 그림자가 지는 법이다.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고, 늘 드리워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세상의 진리이며,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슬픔이다. 기쁨과 슬픔이 잇닿아있는 이 세계는, 도저히 언어라는 것으로 풀어낼 수 없는 영역이 무한히 존재하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 그 사이에 말이다.
그래서 난 되도록, 할 수 있는 한 말을 아끼고, 거칠게 말해 닥치고 사는 것이 가장 이로운 자세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세계는 그렇게 조금씩 침묵으로, 그리고 조용한 글로만 남겨질 뿐이었다. 그것이 가장 선한 일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조언이라는 것을 구할 때면 나는 얼마나 날카로워지는지 나 스스로 보아도 역겨울 지경이었다. 멈춰야 하는데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말과 글이 쉴 새 없이 날카롭게 나오는데 그것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늘 물을 엎지르고 후회했고, 불을 저질르고 활활 타오르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나의 한계는 언제나 나의 코 앞에 있었고, 말처럼 쉽지 않았다. 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끔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이만큼이나 어렵구나 한 것이다.
“하하, 자네 너무 심각해하지 말게. 모든 것은 일어날 것이고, 모든 것은 다가올 것일세.” 라며
바람이 말하면,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렇겠죠?”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