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꽤 괜찮은 소득

그런데 왜 뜬금없이 유튜브에 글을 올리는 것인가, 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22년,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을 때였다. 촬영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나, 언제나 카메라는 곁에 있었기 때문에 촬영이 없는 날이면 나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면들을 채집하곤 했다. 모은 장면들은 음악과 엮어서 짧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운 좋게도 그런 랜덤한 장면과 함께 몇몇 사람들도 같이 끌려 들어왔다. 애당초 유튜브로 뭔가 대단한 걸 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내가 보는 장면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어찌 됐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작업인 듯싶었다.

딱히 음악에 대한 조예도, 촬영에 대해서도 유별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몇몇 사람들은 종종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나와 일면식도 없으나 단순히 어떤 느낌, 취향이라는 것으로 묶여있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ㅡ 장문의 글이라면 딱히 어울리지 않는 곳이지만 ㅡ 온전히 ‘취향’이라는 요소 하에서 나의 솔직한 글을 올리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상도 올리지 않는데 여전히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역시나 미래에 나에 대해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일 것이고, 아직은 내가 가진 취향에 대해서 존중해주는 사람이라는 믿음, 이랄까.

25년, 6월까지 사진 작업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 사진 작업이라는 것을 좀 쉬고 싶어서 ㅡ 카메라 셔터카운트가 13만에 육박했으므로, 평균적으로 매년 4만 컷을, 하루에 1,000장 이상을 찍은 셈이다 ㅡ 7월부터는 아예 카메라에 손을 대고 있지 않다. 나름 기념비적으로 6월에는 내가 원하는 누드 작업을 아주 결이 잘 맞는 사람과 진행했고, 그 작업을 기점으로 나는 온전히 카메의 사각 프레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요가와 책, 글쓰기에만 몰두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적인 창작의 에너지는 ‘이미지’에서 ‘문자’로 옮겨갔고, 매일 쓰는 일기와 편지와 더불어 조금은 솔직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 글을 묵혀둔다 해도 불만은 없으나, “이런 글이라도 나중에 독자를 만들 수는 있는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관심이 필요했던 참이다. 아참, 나중에 한 편의 에피소드로 소개하겠지만, 나는 발리에서 알게 된 홍콩 친구와 매일 짧은 편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벌써 200통이 넘었다.

취향이라는 것은 참으로 미묘하고, 신기한 것이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 끈과도 같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이미 전생에 한 번씩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취향은 비슷한 향, 책, 음악, 공간, 에너지, 사람 등을 모두 포함한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재밌게 읽을 확률이 높고, 내가 “여기서 커피를 마실까요?” 하면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내가 쓰는 글 또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도 한 명의 독자는 있어야 계속해서 글을 쓰는 맛도 있을 게 아닌가. “이 사람은 왜 쓸데없이 유튜브에 영상은 안 올리고 글만 쓰는 거야?”라고 딴지를 건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지인들이 보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글이 있고,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올릴 수 있는 글이 있고, 또 이런 특이한 취향의 공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글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눈 뜬 후 잠들기 전까지 계속 무언가를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다가도 불현듯 글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또 음악을 듣다가 여러가지 영감들이 떠오른다. 얄밉게도, 영감이라는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글로 옮기려고 막상 노트북을 열면 길고양이처럼 휙 사라지곤 한다. 아무튼 요즘은 대부분 글에 관한 것이다. 역시 사진 작업처럼, 썼다가 지우는 글도 있고, 쓰고나서 영 별로니 공개하고 싶지 않은 글도 있으나 7월부터는 매일 이 보이지 않는 영감 덩어리를 잡아서 끝까지 짜내보고 싶은 마음이다. 매일 한 편씩.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다. 그러다가 “이런 건 책으로 한 번 내봐도 좋으려나?”하는 마음까지 닿으면 내 인생에 책을 한 권 남기는 것이고(꼭 누가 보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소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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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써야한다는 부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