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써야한다는 부담감
나는 6월에 읽은 몇 권의 책으로부터 “글을 써야 하는데"라는 마음의 불편함(그것은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을 계속 키우고 있었다. 어딘가에 앉는다 ㅡ 생각을 한다 ㅡ 추상적인 무언가를 눈에 보이는 문자로 적어나간다 ㅡ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수집해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해나가야 하며 나는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 는 마음의 불편함이 계속해서 책을 읽으며 자라나갔다. 그것은 한 번에 쏟아지는 봇물 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기분 나쁘게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나가고 있어서 그것을 틀어막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 읽는 행위로부터 내 안에는 무언가 가득 채워지는 것도 있엇지만, 동시에 읽는다는 것은 내 안에 새어나가고 있는 물을 막는 행위이기도 한 셈이다. 새어나간다, 불길하게 물이 떨어지고 있으며, 그 물이 고였을 때 생기는 자국이나 파생되는 녹슨 물 같은 것들이 영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성격상 나는 그것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써야 할까, 그럼 무엇부터 써야 할까 등 나는 그런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일단 시작하는 성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잡생각들을 절대로 떨치지 못하고 자기 전에 10분씩, 15분씩 입 안에 머금고 돌돌 골리며 “이러다간 또 잠 때를 놓치게 될텐데…”하는 걱정으로부터 또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엔 잠에 들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쓴다는 것’에 끌리는 일은, 참으로 사소한 것들을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는 정신 사나운 놀이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산다는 건 참 복잡한 일이야. 에이, 밥이나 먹자!”라며 무심히 지나가지만, 쓰는 일에 끌리는 사람은 “산다는 것? 그건 말이지, 그니까 그건, 아 그래 예를 들자면 이런 거랑 비슷해. 그렇지, 아니야 그런데 꼭 그렇게만 설명할 순 없어. 음 그래 다시 설명하자면 이런 거야. 그렇지. 물론 내 생각은 이래.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르게 설명할 수 있어.” 이렇게 말을 풀어나가면서 끝도 없이 풀리는 실타래 같은 걸 줄줄 풀어내는 일과 비슷하다. 전자는 이런 답변을 듣고선, “도대체 무슨 소리야? 밥이나 먹자니까.” 라고 덧붙일 것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공책이며, 메모장이며, 그런 흰 공백에 “~한다는 것은 말이지” 하면서 운을 떼고 있다.
지금도 그런 부담감으로 ‘쓴다는 것’에 대해서 사유하고, 그것을 장황하게 글로 풀어나가며, 온전히 나의 관점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뜯어보고, 살펴보고, 적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7월에 막 접어든 여름 날, 나에게 ‘쓴다는 것’은 내 안에 구멍을 틀어막는 일이다. 그 구멍이 도대체 몇 개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새어나가는 이 느낌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자아내기 때문에 나는 쓰고 있다. 마치 “사랑니가 생겼나?” 하면서 혓바닥으로 보이지도 않는 어금니 안 쪽을 계속 눌러보고, 만져보는 일과 같다. 역시 사랑니는 생기지 않았다. 생겼으려나?
나는 되도록 지속적으로, 하루키 작가처럼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 사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매일 메모장에 쓰고 있으므로, 나는 매일 썼지만 무언가 글다운 글, 내 생각을 좀 더 세밀하게 정리해서 누군가가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그런 걸 써서 내 몸 안으로부터 새어나가는 물들을 틀어막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