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감금
모든 음식이 말끔히 비워지고 나서(아마도 우리는 긴 이야기로 꽤 허기가 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뜬금없이, 그녀에게 감금이 필요한 시기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침 식후에 마실 차가 나왔다. “감금?” 그녀는 그 단어가 가진 폭력성에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들은 단어를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응, 감금. 누군가에 의해서 갇히는 방식은 아니고, 어딘가에 스스로 갇혀서 나의 한계를 시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누구든 사흘 정도 어딘가에 갇혀서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면 꽤 괜찮은 책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 물론 내가 꼭 책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그 기록 자체가 꽤 소종한.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생각 중이야. 만약 어떤 집에 나를 가둔다면, 물론 완전히 나갈 수 없는 상태는 아니겠지만, 조용한 골목 어귀에 2층 집을 얻고 싶은 생각이 들어. 창문에는 햇빛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커튼이 달려있고, 넓직한 책상이 하나 있는 거지. 방에는 침대와 책상 뿐이야. 휴식과 글쓰는 것 외에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거지. 창밖을 내다보면 이따금씩 아이들이 뛰놀며 알 수 없는 소리로 새처럼 지저귈 거야. 지긋이 나이가 든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녀딸의 손을 잡고 함께 거니는 모습이 보일지 몰라. 난 그곳에서 시계도 없이, 해가 지는 것으로만 시간을 추측하고, 집중해서 글을 쓰는 거지.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이마쉴 때는 글을 쓰고, 내쉴 때는 내가 쓴 기록들을 살펴보는 거야.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문자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어느새 성처럼 견고해질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놀이터가 되는 거야. 모든 사람이 모래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는 내가 만든 문자의 탑을 흥미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어. 아무렴 어때. 성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인생에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의 감금이 나한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조금 이상한가?” 나는 장황하게 내가 생각하는 ‘감금’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했다. 그녀는 종종 차를 마시며 어떤 반응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서는, “뭐야, 그런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굳이 어딘가에 감금될 필요까지는 없잖아.”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야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거야. 마치 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을 때 비가 와야만 했던 것처럼. 비가 오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아쉬운 거지. 만일 그때 해가 짱짱하게 비췄다면, 우리 마음의 온도는 너무 높아져서 이야기도 같이 풍선처럼 붕-하고 떠올랐을지도 몰라.” 나는 다시 한 번 감금 당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 후 테이블 위에 초록빛깔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다. 유리 테이블 위에 꽃무늬 컵이 기분 좋게 부딪치며 맑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건 핑계에 불과해. 모든 것은 때에 따라서 다가오는 거야.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걸. 비는 자연스럽게 내린 것 뿐이야. 우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눈 것이고. 만일 너가 정말 무언가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지금도 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해. 그렇지 않아?” 그녀는 다시 날카롭게 반론을 제시했다. “만일 너와 내가 한 방에 3일 동안 갇히게 된다면 우리는 뭘 하게 될까?” 라고 나는 물었다. “만약 그런 감금 사건이 벌어진다면, 누군가가 우릴 이유도 없이 한 방에 가둬두게 된다면, 우린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이가 될까? 그런 사랑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