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음식과 마음
그녀가 나를 데려간 식당은 카페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우린 택시를 불렀고, 택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금방 카페 앞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거울로 우리 둘을 힐끗 쳐다보고선, 다시 앞을 보고 목적지로 향했다. 나는 그 눈빛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눈을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 안에서 약간의 호기심과 설레임이 느껴졌다. 동시에 약간의 슬픔도 느껴졌지만, 나는 그 슬픔이 내 안에 있는 것인지 그녀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자라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뭐야?” 그녀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택시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다시 그녀의 긴 머리를 보았고, 꽤나 길고 검은 그 머리카락에서 약간의 아련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쥐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또한 내 과거에 대한 집착 같아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만약 그 순간 머리카락을 움켜 쥐었다면, 그녀는 역시 “뭐하는 거야?”라며 물을 것이다. 역시 나는 “아, 아무것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도착한 식당은 작고 아담한, 정식 집이었다. 어딜 가든 정식집은 깔끔한 인상을 준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정식집의 묘미랄까. 정식에는 밥과 국, 고기, 그 외에 소소한 반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 밥을 먹으며 인위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내가 직접 요리를 해줄게.”
”요리를 할 줄 알아?”
”응,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챙겨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까. 동생이 있다고 얘기했었나?” 그녀는 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국을 후루룩 마시며 물었다.
”아니.”
”철없는 여동생이 한 명 있어. 그래도 사이는 엄청 좋아. 매일 통화도 하고.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안 계셨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내가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자란 셈이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부엌에서 이런 저런 요리를 하면서 자랐어.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먹을 음식을 늘 직접 만들어서 챙겼고. 솜씨도 꽤 좋아.”
”스스로 요리를 잘 한다고 하는 사람의 요리는 잘 믿지 못하는 편인데.”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야. 정말 믿어 봐도 좋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어?”
나는 딱히 먹고 싶은 요리는 없고, 가장 자신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겨우?”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밥을 한숟갈 왕 입에 넣었고, 나는 음식은 맛보다 분위기가 아니겠냐고 물었다. 분위기가 아무리 안 좋아도 음식이 맛없으면 꽝이라며, 그녀는 조소 섞인 눈빛을 보냈다. 난 어떤 요리보다도,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며 음식은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할 예정이라고, 맛 따위야 사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언제나 마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맛이 있으면 좋잖아.”
”그거야 그렇지. 아무렴.”
”지금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많아. 아마 입맛에 맞을 거야.”
”내가 어떤 입맛인지 알고?”
그녀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내 취향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 나는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났을 때처럼 약간의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정말 나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 모른다.
”밖에서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게 좋아.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잖아? 음식에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거든. 시간도, 애정도, 그 사람과 또 음식에 대한 마음이 깃드는 거지. 밖에서 먹는다면 그런 걸 온전히 느끼긴 어려워. 너무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돌아가셔서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에 대한 아주 작은 기억만 몇가지 갖고 있어. 그게 무슨 음식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 좋게, 그리고 많이 먹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요리를 해준다면 많이 먹을 자신 있어.”
”많이 먹지 않아도 돼.”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우린 음식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빈 접시에 채우듯이 이어나갔다. 접시에서는 종종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창그랑 창그랑 났고, 음악을 연주하듯이 우리의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져나갔다. 식당의 배경음악으로 무언가 익숙한 음악이 기분좋게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나에게도 아련한 기억이 담겨있는 음악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처럼.